[책 한 구절] 잡글 번역과 원문 무시에서 시작된 프랑스혁명의 한 씨앗

October 1, 2010 by 김홍식   코멘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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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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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드로는 빚을 갚기 위해 잡글을 쓰느라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했다. 『백과전서』도 처음에는 빚 독촉에서 벗어나볼 요량으로 맡았던 일거리였다. 이 출판 프로젝트는 번역일로 시작되었는데, 1728년 영어로 발행된 에프라임 체임버스의 『백과전서: 예술 및 과학 일반사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이 영어 백과사전은 과학의 ‘대가들’이 정리한 내용을 모아 매력적으로 꾸며놓은 것인데, 짜임새는 취약한 편이었다. 18세기 중엽에는 ‘대가(virtuoso)’라는 말이 호기심 넘치는 아마추어를 뜻했다. 이런 대가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 잡글로 돈을 벌 만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읽어서 알아들을 만한 내용을 매끈한 문장 몇 개로 적어주면 이 대가들이 점잖은 대화 자리에서 이야깃거리로 써먹을 상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단편적인 내용을 수백 쪽이나 번역하는 일은 디드로 정도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너무나 지루한 일이었다. 일단 일을 맡아 시작해보니 일의 내용이 변해가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체임버스의 원문은 아예 무시하며 적어나갔고, 항목별로 원문보다 분량도 많고 깊이 있는 글을 써줄 협력자들까지 규합했다. (이들이 루소와 볼테르를 비롯한 백과전서파encyclopédistes다.)  『백과전서』는 사실상 직업인들이 쓸 기술적 매뉴얼 용도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디드로는 그의 독자들을 ‘얄팍한 대가’로 보기보다 ‘생각하는 사람’, 즉 철학자로 보고 그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싶었다.

장인의 노동을 계몽주의의 상징으로 주장할 수 있었던 큰 줄기를 『백과전서』는 어디에서 찾았을까? (...) 『백과전서』에서 디드로와 그 동료들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생동감 넘치는 활력을 예찬했다. 바로 이 활력에 눈을 돌린 백과전서파는 평범한 근로자들을 가련하게 보는 게 아니라 찬양하고 싶어했다. (...) 

- 리처드 세넷, 《장인The Craftsman》, 3장 “기계” 153~155쪽 (일부 생략과 재편집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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